엠파이어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반지의 제왕', '호빗' 시리즈의 피터 잭슨 감독은 DC '아쿠아맨'의 연출을 두 번이나 거절했다고 합니다. 워너 브라더스의 전 CEO인 케빈 츠지하라가 6개월에 걸쳐 두 번씩이나 아쿠아맨을 좋아하냐며 연출 의향을 타진했지만, 두 번 모두 자신은 아쿠아맨 스토리에 관심이 없다며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고 합니다.
피터 잭슨은 자신은 아쿠아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할뿐더러, 코믹스 원작의 영화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아쿠아맨 영화 연출에는 적합하지 않는다며 '아쿠아맨' 감독직을 고사했고, 결과적으로 DC의 '아쿠아맨'은 '쏘우', '컨저링'을 만든 제임스 완 감독이 연출을 맡아 11억 878만 달러(한화 약 1조 2,485억 원)에 달하는 전 세계 흥행 수익을 거두는 대히트를 치게 됩니다.
물론 피터 잭슨이 '아쿠아맨'의 연출을 맡았다고 해서 제임스 완 감독만큼 영화의 흥행이 보장됐으리라는 법은 없지만, 그럼에도 피터 잭슨 특유의 스텍타클과 서사가 '아쿠아맨' 스토리에 녹아든 기념비적인 작품이 나왔을 수도 있었겠다는 아쉬움은 없지 않네요.
자, 그렇다면 피터 잭슨 감독처럼 이런저런 이유로 슈퍼히어로 영화 연출을 거절했던 할리우드 유명 감독들은 누가 있었을까요? 데이빗 핀처 감독은 두 번이나 '스파이더맨' 감독 자리를 고사했다고 합니다. 지난 2002년 샘 레이미 감독이 연출을 맡았던 '스파이더맨'의 연출을 고사한 이후, 10여년 후 리부트된 앤드류 가필드 주연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감독 역시 거절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음산한 영화적 취향이 마블 코믹스 슈퍼히어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절의 이유였습니다.
'에일리언' 시리즈의 리들리 스콧 감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그간 다종다양한 슈퍼히어로 영화의 연출을 제안받았지만, 슈퍼히어로 영화가 영화의 질을 하향평준화시킨다, 슈퍼히어로 영화는 자신의 취향이 결코 아니다는 이유로 모든 제안을 고사했다고 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다크 나이트' 시리즈로 DC 슈퍼히어로 배트맨을 새롭게 정의한 상상력의 소유자였지만, 그러나 지난 2012년 '다크나이트 라이즈' 이후 슈퍼히어로 영화 연출은 그만하겠다는 노선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멜 깁슨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배우 출신 감독에서 이제는 제작자로 더 큰 명성을 떨치고 있는 멜 깁슨은 과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토르' 시리즈의 오딘 역을 제안받았지만 거절했고, 이후 그 어떤 슈퍼히어로 배역이나 감독직에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인물로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원천 기피대상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역시 비슷한 상황입니다. 대부분의 연출작을 절대적인 자신의 취향에 맞춰 노선을 고집하는 할리우드의 두 거장 감독인 탓도 있고, 각종 인터뷰에서 슈퍼히어로 영화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만을 고수하고 있는 두 감독이기에 애시당초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제임스 카메론이나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슈퍼히어로 영화 연출을 제안하는 경우도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네요.
스티븐 스필버그의 주장 따라, 슈퍼히어로 영화는 과거 서부극 장르가 쇠락의 길을 걸었듯 같은 방식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고 할리우드에서 사라지는 결과가 나올까요. 아니면 제임스 카메론이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같은 할리우드 거장들의 손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하는 장르로 남을까요. 피터 잭슨이 '아쿠아맨'을 연출했다면 어떤 작품이 등장했을까 사뭇 궁금해지는 순간이네요.